「生の悲しみ」 (『声 千年先に届くほどに』ぷねうま舎 より) 韓国語版

「생(命)의 슬픔(生の悲しみ)」  (原文日本語  韓国語訳:金利真)


사람은,

외로움도 슬픔도 아픔도, 결코 메워낼 수 없어서,

다만 한 가지 가능한 것은, 

존재의 외로움, 존재의 슬픔을 함께 바라보고, 

함께 있는 것 일테지.

존재의 심(芯)에 머무는 외로움과 슬픔이나 아픔을,

순간의 기분 좋음과 즐거움과 또 다른 무언가로 메워보려 한 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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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오롯이 혼자 태어나서, 단지 홀로 죽어가는 생명 그 자체가, 

애초에 슬프고 외로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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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생명의 슬픔을, 

한 순간, 찰나의 기쁨으로 잊어버리는 것 정도일 뿐.

그 찰나를 겹겹이 쌓아서 슬픔으로부터 헤어 나오려는 욕망에 몸을 빼앗겨버리면,

그것은 한도 끝도 없다.

욕망을 쌓으면 쌓을수록, 얼버무림과 눈속임의 비루함은 끝이 없어,

생명은 더욱더 슬퍼한다,

뿌리 없는 기쁨에 발을 차이기만 하는 어리석음에, 

생명은 더욱더 상처 입는다,

사는 것이 더 부끄럽고, 외로워진다.

 

그러나 단 하나,

기댈 곳 없는 생명이,

서로의 어찌할 바 모를 무의무탁을 느끼고,

그 기댈 곳 없음에

다만 몸을 기울일 수 있다면

탐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기대지 않고, 내치지 않고,

다만 그 슬픔의 온도를 가만히 느끼며,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그렇구나, 너도 슬프구나,

그래, 나 또한 슬프다. 

너도 나도 둘 다 슬픈 생이다.

너의 슬픔은,

그것이 너의 슬픔이기 때문에 애틋하다.

나의 슬픔은,

그것이 나의 슬픔이기 때문에, 너는 나의 슬픔이 애틋하다.

 

너와, 나는,

함께 있는 것의 슬픔을 택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사랑이어도 좋다.

각오라고 한다면, 각오여도 좋다.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함께 있는 것을 정해낸 그때,

생의 슬픔에서, 사는 것의 기쁨이 곤곤히 샘솟는다.

기쁨의 심에는, 생의 슬픔.

이 슬픔을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람은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진정한 생을 살리라.

 

-姜信子 『声』(2015)-